퍼즐 - 권지예
퍼즐 - 권지예
삶이라는 깊은 바다 속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읽고 나면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체감하는 7개의 단편이 묶여있는 소설집이다. 7개의 이야기 중에서 두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죽음으로서 인생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걸까. 여자들이 모두 주인공이며, 이야기들은 기괴할 만큼 독특하고 상상을 초월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가정은 칼끝에서 춤을 추듯 불안하다. 특히 여성들의 위태로움이 눈길을 끈다. 불륜에 빠진 유부녀, 유부남을 사랑하는 노처녀, 또는 바람 난 남자의 아내 등, 모두 어딘가 비어있고, 허기져 있다. 결핍된 애정을 욕망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그 끝의 마지막 퍼즐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결혼과 육아로 사라지는 여성성과 애정의 권태, 그러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의 퍼즐 조각은 이미 잃어버렸거나 파괴되어 완성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죽음으로 내몰리는 애정의 권태와 빗나간 욕망 등 삶의 비극성에 두렵기까지 하다.
7개의 이야기에서 주를 이루는 분위기와 인물들 간의 관계 또는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것은 첫 번째 단편인 <Bed>인 것 같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남자에게 침대는 그녀와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다. 여자에게 침대는 안정과 보장이자 결혼이라는 족쇄로 자기를 옭아매는 도구다. 또한 남자의 아내에게 침대는 그저 잠깐 눈 붙이고 쉬어가는 의미 없는 정류장일 뿐이다. 사랑은 세 사람 모두에게 흐르지만 그 방향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욕망은 추운 겨울의 텅빈 바다처럼 쓸쓸하다. 남녀간의 사랑의 주 무대이자 절정의 장소인 침대라는 공간을 통해 본 치정의 끝은 세 사람 중 누구에게도 너그럽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상처나 욕망을 내면 깊숙한 곳에 가지고 멀쩡한 얼굴로 위장한 채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길가의 낯선 사람조차도 속에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지 두려워진다. 섬세한 문장은 아름답지만 금방 피가 뚝뚝 떨어질 듯 잔인하고, 적나라하다. 삶의 길목에 숨어있는 권태와 환멸이 조금은 으스스하게 그려져 작가의 말대로 약간은 특이한 납량특집 소설 같다. 삶의 잔인함에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여름의 끝 자락에서 공포 소설보다도 더 진하게 서늘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