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잘가요 언덕 : 차인표

by 예흐나 2023. 3. 6.
반응형

차인표 저/김재홍 그림 | 살림출판사 

 

  이 책은 위안부로 끌려가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발견된 쑤니 할머니의 젊은날을 담은 이야기이다. 누군가 실제 이 이야기의 모델이 있다 생각하니 더 가슴 아프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마치 그 옛날 잠들기 전 할머니께서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해주시던 옛날 이야기처럼 슬프지만 아름다운, 우리만의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따뜻한 마음씨로 사람을 품는 착한 순이, 호랑이를 닮은 소년 우직한 용이, 적이었지만 인간다웠던 일본군 가즈오, 전쟁에 희생당한 세 젊은이의 슬픈 이야기가 우리네 과거사와 맞물려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바람에 쓰러져버린 층계논의 벼들을 마을사람들과 일본군이 힘을 합쳐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국가와 계층을 초월해 모두 자연의 일부인 하나하나 개체가 되는 ‘인간’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마을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이 보는 사람까지 느껴질 만큼 정이 넘치고 따뜻하다.

“당신나라에 와서 전쟁을 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일본군 가즈오가 순이에게 속삭이는 이 사과는 과거의 일본군이나 안일한 한국정부가 해야 할 말이 아닌 후손된 자로써 희생자들을 더 품지 못한 현재의 일본과 한국의 우리 세대 모두가 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백두산 언저리에 있는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 보낼때 모이는 잘가요 언덕..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용서하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잘가요 언덕에서 굴곡지고 고통으로 얼룩졌던 과거의 아픔을 떠나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백호 때문에 가족을 잃은 용이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순이의 모습에 현재 우리세대가 아픈 민족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투영되는 듯하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먼저이고, 앞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용서의 시각이 먼저이지 않을까.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 시대 무고하게 죽어간 모든 사람이 ‘엄마별’에서 쉬기를 기도해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