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프 베론 저/이옥용 역 | 내인생의책 | 원제 : Slaaf Kindje Slaaf
부유한 농장주의 딸 마리아의 총 40개의 짤막한 일기로 엮어낸 책이다. 오로지 가슴이 왜 나오지 않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부러울 것 없는 백인소녀 마리아는 생일 선물로 흑인노예와 채찍을 선물로 받는다. 마리아의 일기에 종종 등장하는 흑인노예의 생활사는 담담한 문체와는 달리 실로 끔찍하다. 사람을 사고 팔던 시기, 노예를 같은 사람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기에 사는 마리아나 마리아의 부모, 주위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오히려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이책은 등장인물은 모두 허구이지만 노예들에게 일어난 일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에서 작가가 직접 전해들은 사실들이다. 맑고 순수한 한 소녀는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정말 모르기에 흑인노예에 대하여 일말의 가책도 없이 받아들이며, 때로는 괴롭히기도 한다. 한 소녀의 성장소설 쯤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마지막에 가서는 해피엔딩이겠지 하고 예상했지만 천연덕스러운 마리아의 태도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에 사는 우리도 실상은 마리아와 다르지 않다. 악의는 없지만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도 없는 우리가 아닌가. 오늘날에도 뚜렷한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공공연히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마리아처럼 정말 몰랐기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가책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자 노예를 성의 노리개쯤으로만 생각하는 마리아의 아버지와 노예들 앞에서는 잔인한 짓도 서슴치 않는 마리아의 어머니와 그 친구들은 마리아에게도 자신들의 노예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우리들도 마리아의 부모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후손들도 마리아처럼 전혀 가책 없이 위선을 일삼으며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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