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덕여왕은 고사하고 삼국시대 역사에 대해서 사극 같은 드라마를 통해 본 내용이나 조금 알고 있을 뿐 사실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책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삼국의 정세나 중원의 패자인 당나라와의 관계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 마치 역사 공부를 다시 한 기분이다. 선덕여왕 외에도 그와 얽힌 선덕여왕의 부군들, 천명공주, 김유신, 김춘추, 서동과 선화공주의 비화 등 소설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지나가버린 역사이지만 내 상상 속에서 신라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덕만과 천명..그리고 용춘공의 비극적인 삼각 관계, 그리고 어긋나는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던 역사속의 내용들과 비교하며 읽게 되어 그 재미를 더한다. 또한 덕만이 사랑에 눈뜬 여인에서 그 속에 사랑 대신 백성을 품게 되는 제왕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같은 여자로써 마음 아프면서도 괜히 뿌듯해진다. 선덕여왕은 보위에 올라 여느 왕들처럼 왕권강화부터 다지기 보다는 더 우선적으로 고단한 백성들의 삶부터 보듬었다. 궁궐의 재산을 처분해 굶주리는 백성들부터 챙기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진정 신라의 어머니가 되어가면서도 김유신과 김춘추 등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고, 또한 그 인재의 힘을 적절히 분배하며 등용해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끌어내는 정치적 수완 또한 뛰어났다.
그리고 삼국을 통합해 더욱 강성한 나라를 세워 당나라에 맞서고 싶은 선덕여왕의 자주적인 정신이 잘 드러난다.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도움을 받고 있던 신라이지만 당나라에서 독립해 이 좁은 한반도에 얼마나 부강한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하는 원대한 꿈을 품은 여인이다.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정치의 중심에 서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편견을 무참히 깨뜨리고 태평성대를 이뤄낸 강한 여인, 보위를 위해 사랑했던 용춘공을 포기해야 했던 여인으로서의 비극을 감춘 채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당차게 국정을 운영하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여인이다. 외세에는 대쪽같이 강하고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그 카리스마는 후손들에게 진정한 지도자상을 제시해준다. 현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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