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핀 드 비강 저/이세진 역 | 비채 | 원제 : No et Moi
살아오는 내내, 나는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바깥에 있었다.
난 항상 이미지나 대화의 바깥에 동떨어지고 어긋나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말이나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액자 바깥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창 저편에서
그네들이 빤히 듣는 말을 나만 못 듣는 것 같았다.
천재소녀 루는 높은 아이큐 덕에 본래 나이보다 높은 학년을 다니는 ‘지적조숙아’다. 말하기, 발표 따위를 제일 싫어하며 모든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만 길거리의 소녀 노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은 루. 동생을 잃고, 엄마의 심각한 우울증으로 집안은 침묵 속에 가라앉고, 루는 더욱 혼자만의 자아로 세상으로부터 숨고 만다. 거리에서 생활하지만 노숙자라고 불리 우는 것은 질색인 18세 소녀 노. 고단한 길거리 생활에 지친 노는 세상과 사람을 경계하며, 산다는 게 막막하기만 하다. 루는 노를 인터뷰하며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완전히 다른 길거리의 세계를 알게 된다. 루 또한 처음에는 노와 노의 세계를 마음을 열고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우리는 초음속 비행기를 띄우고 우주에 로켓도 발사한다.
머리칼 한 올이나 미세한 살갗 부스러기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고,
3주나 냉장고에 처박아두어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고
싱싱하게 유지되는 토마토를 만들어내며,
손톱만한 반도체 칩에 수십억 가지 정보를 저장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노는 변화되고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호텔에서 일하게 되면서 노는 술과 약물에 중독되고 결국 루의 부모님의 의해 쫓겨난다. 노의 행동은 더욱 심해지 고, 그와 함께 루의 자아는 무너지고 붕괴되기도 한다.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는 루, 그래도 끝까지 노를 보듬어주고 보살펴 주는 것은 루였다. 끝내는 노가 놓아버렸지만 루는 노를 안음으로써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끌어안을 줄 알게 되고 본인 또한 성장하게 된다.
나는 지구상의 모든 죽은 눈빛들을,
번득임도 없고 광채도 없는 수백만의 눈빛을 생각했다.
방황하는 그 눈빛들은 다름 아닌 세상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복잡함, 소리와 이미지로 포화되어 있으면서도
그렇게나 헐벗을 세상을 반영할 뿐이다.
루는 노를 자기 집에 데려오는 작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과 노의 삶의 방식을 바꾸었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말조차 붙이지 않던 노에게 관심, 그리고 함께하기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노숙자들을 집에 데려가 돌보기까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불행한 사연에 혀만 끌끌 찰뿐이다. 마치 모래처럼 부서지기 쉬운 관심이다. 노와의 만남, 한 소녀가 바라본 길거리 세상을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책은 한 소녀의 단순한 성장통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 느끼고, 깨달아야 할 이야기다. 눈을 크게 뜨고 살면 보이지 않던 것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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