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칭]
사마리아는 <지키는 산>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오므리왕(B.C.885-874년)이 '세멜'이라는 사람에게서 산을 샀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부르게 되었다.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열왕기상 16:23-24]
[위 치]
사마리아는 중앙 팔레스타인에 위치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 북방 약 56km, 지중해에서 약 33km 내륙으로 들어간 지점으로, 91m의 높은 구릉 위에 있다. 삼면이 경사가 느린 옥토로 둘러싸여 있는데, 구릉 위에서는 예루살렘과 에스드렐론 평야와 북부를 잇는 남부의 주요 도로를 바라볼 수 있다.
[관련 역사]
B.C. 870년경 철기시대 초기에 이스라엘 왕 오므리가 세멜에게서 은 2달란트에 산을 사고 성을 세워 사마리아로 명명한 후, 수도를 디르사로부터 이곳으로 옮겼다.(왕상 16:24) 또한 사마리아는 B.C. 724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포위를 계속한 결과 3년 후 그의 후계자인 사르곤왕 2세에 의해 함락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1년에 멸망했다.(왕하 7:24-26) B.C. 612년 바벨론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앗수르 제국을 분할할 때 사마리아는 바벨론 영토가 되고 지방의 행정부가 되었다. 그 후 B.C. 539년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하자사마리아는 예루살렘과 북부 유다를 포함해 바사의 한 도의 행정부가 되었는데, B.C. 6-5세기에는 많은 포로가 귀환하여 재건되었다.(스 4:8-24, 느 2:9-20) 시간이 흐른 후 사마리아는 헬라 및 로마에 정치적으로 예속되었는데, 신약시대에 에수께서 이 지역을 여행하셨으며(요 4:1-26) 부활 후 제자들의 선교와 사역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다.(행 8:1-25, 9:31, 15:3)

[유적 및 고고학]
1967년 발굴된 돌기둥에 의하면, 성경 외에 사마리아 성읍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은 B.C.798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닷니라리 3세의 문서다. 설형문자로 '사메리나'라는 이름이 나온다. 또한 사마리아 발굴에서 '여로보암 2세(B.C.793-753) 때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패각이 출토되었는데, 거기에는 성경에 언급된 많은 인명과 지명들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사마리아의 유적지에서 아모스 선지자가 많이 언급했던 상아(암 6:4)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영적 교훈 및 상징적 의미]
● 사마리아는 세속화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는 중세의 부패한 교회와 물질 문명에 잠식된 현대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마리아의 결국을 교훈 삼아 순수한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
●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고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해 동족 유다의 멸시를 받은 사마리아이지만, 예수는 공생애를 통해 그곳에 대한 긍휼과 관심을 보이셨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오늘날도 그를 떠난 방탕한 자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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