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사전
스물네 번째 이야기. 르호보암
[ 인적사항 ]
르호보암(Rehoboam)은 <백성이 많아지다>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원전 972년에 태어나 기원전 913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솔로몬 왕의 아들이자 다윗 왕의 손자로, 그의 어머니는 암몬 족속의 나아마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왕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성장하고, 그의 출생과 배경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사십일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빼신 성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 [열왕기상 14:21]
[ 생 애 ]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 성장하였으며,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세겜에 모여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기원전 931년 르호보암은 41세에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통치 초기에는 백성들의 기대가 컸으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과중한 세금과 노역의 경감을 요구할 때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자신의 젊은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결국 더 강력한 세금을 부과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의 통치에 반발하여 북쪽으로 이주하였고, 결국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르호보암은 이후 17년간 남유다를 통치하였고, 이러한 분열은 르호보암의 통치가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한편 르호보암은 재임 기간동안 유다에 방비용 성읍들을 건축하여 국방에 주력하여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애굽왕 시삭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18명의 아내와 첩 60인을 취했으며 아들 28인, 딸 60인을 두었는데 이방 여인들과의 불경건한 결혼으로 유다에 우상숭배의 발판을 놓은 인물이었습니다.

[ 평가 및 교훈 ]
르호보암은 그의 통치 방식과 결정들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일부 역사가들은 그의 정치적 어려움과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였으며, 이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의 통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며,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의 통치를 실패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욕망이 결국 왕국의 분열로 이어졌음을 보며, 그의 통치에서 우리는 권력의 책임과 그에 따른 결과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의 요구를 무시하여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을 보며, 지도자들은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를 존중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상숭배를 조장한 점에서도 비판받고 있으며, 신앙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 핵심성구 ]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역대하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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